건축과 5학년 맞나 싶을 정도로 헤이리 안 가 본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물론 나도 포함. 사실 요즘엔 조금 나아졌다지만 원래 헤이리 가려면 차가 없는 사람은 작정을 하고 하루를 잡아야 되니 조금 귀찮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대로 졸업하면 어디가서 부끄러워 말도 못 할테니 다들 구경이나 한 번 하자 싶어서 다녀왔다. 그런데 정작 건물 구경은 별로 한 것 같지도 않고, 기억에도 안 남고....
기억에 남는 건...
숯불 3개의 허세와 폭풍같은 화력!
엠티 후에도 길이길이 설계실에서 되풀이 될 유행어...나와!
민박집 주인 아저씨와 민박집을 배경으로 한 호러 시나리오
한밤 중의 요가 교실과 피아노 교실
남녀 할 것 없이 새벽에 모여 앉아 가십걸 보면서 신세한탄
아무튼 이런 기억이 남는데...재밌는 엠티였다.
비록 평균 나이 25.8세의 노쇄한 구성이라 신입생들 엠티의 성공을 따지는 단 하나의 잣대인 마신 술의 양으로 본다면 이건 분명 망하고도 망한 엠티이지만 이젠 이런 엠티가 더 좋다. ㅋ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평을 하고 있는 영화인데다 중학생 때 강한 인상을 남겨줬던 대부와 비교되는 영화라는 이야기가 많아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영화이다. 마침 이번 주에 개봉하게 되어서 날씨가 따듯한 오늘을 이용해 보고 왔다.
영화 이야기부터 하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지만 가끔씩 등장하는 조금은 섬뜩한 장면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졌다. 예전에 모델 만들다가 왼쪽 엄지 손가락을 심하게 베고 난 이후에는 이런 장면들에 더 약해진 것 같다. 그래서 초반 면도날이 등장하는 장면들에서는 계속 안절부절하는 상황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인터넷에서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보면서 범죄 영화라는 소재가 강하게 어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고나니까 범죄 자체가 중요한 요소는 아닌듯 싶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구로 범죄, 교도소와 같은 특수한 소재들을 잘 이용하고 있지만 영화 전체를 흐르는 이야기는 그런 특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좀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하는 행위들은 다를지 모르지만 영화 속의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분명 보는 내내 집중하게하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지만 사실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를 모두 제대로 감상하며 보기에는 내가 가진 감상의 폭이 좁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이 영화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읽으면서 내가 눈치채지 못 한 영화가 가지는 매력들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이지만 그런 매력들을 알게 되었으니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런 매력들을 내 눈으로 확인 해 보고 싶다.
작년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마지막으로 씨네큐브에 간 적이 없었지만 오랜만의 씨네큐브는 내 기억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운영하는 곳이 바뀌었지만 같은 위치에 거의 그대로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물 이외의 먹을 것, 마실 것은 일절 반입이 안 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야 불을 켜는 씨네큐브의 매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17茶 광고가 하나 꼭 나왔던 것 같은데 광고가 하나도 안 나오게 된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달라진 것이겠다.
어떤 이유로 운영자측이 바뀐 것인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좋아하던 극장이 걱정 했던 것과는 달리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남아 있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관객에 대한 불평을 조금 하자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불도 안 켜졌는데 커튼을 걷으면서 나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전혀 웃기지 않은 장면임에도 영화가 상영되던 2시간 30분 내내 킥킥거리던 사람은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니 뎁이라는 네임 밸류 높은 연기자를 앞세운 홍보를 펼치는 영화에서 내 눈을 끈 것은 조니 뎁이 아닌 붉은 여왕 역할의 헬레나 본햄 카터였다. 듀나님이 리뷰에서 "붉은 여왕이 벌이는 온갖 야비한 행동 뒤에는 가슴에 삼천 원 정도를 감춘 슬픈 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원작을 바꾸어서 주인공인 앨리스가 악역의 캐릭터를 없애고 평화를 찾는다는 어쩌면 뻔한 스토리가 되었지만 그렇게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대놓고 악역인 붉은 여왕의 매력 덕분이리라. 그리고 내 눈을 잡은 것은 주인공 앨리스가 아닌 앤 해서웨이. 아름답다!
+뒷 자리는 가득찼고 앞 자리는 앞 뒤 좌석간 거리가 좀 더 멀다는 말에 혹해서 덜컥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더니 "극장에서 좋은 자리는 앞 쪽 보다 뒷 쪽"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경험을 했다. 목이 아프거나 하진 않더라도 화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굉장히 산만한 시간을 보낸 것만 같다.
+영화를 보는 극장과 시간대의 선택도 중요하다는 것 또한 새삼스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영화가 나에게 뭔가 심오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나 영화 자체 내적으로 우수함을 전달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럴 정도의 안목을 가진 것도 아니고...다만 팀 버튼 감독의 색깔로 바뀐 앨리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잠시 그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세계로의 경험은 기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나는 팝콘과 오징어 냄새를 맡으며 주변의 잡담들을 듣고 있자면 내가 있는 곳은 원더랜드가 아닌 대한민국의 멀티플렉스 극장 b-12 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